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분향소에 다녀왔습니다.


어제 저녁, 미술입시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한 아이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아이가 봉하마을에 가보려한다는 말을 듣고, 저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대학 친구들 이승은과 정선아의 마음도 함께 가지고서
바로 오늘, 봉하마을에 다녀왔습니다.

전방 3km가량에서 차량통제를 해서 그곳에서부터 걸어들어갔습니다.
검은 옷이 졸업식 때 입은 정장밖에 없어 블라우스셔츠만 흰 것으로 갖춰입은 뒤 구두를 신고 갔는데,
이 구두가 말썽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일 거라 예상을 했음에도 그 정도로 긴 행렬일 줄 몰랐고,
이 구두 바닥에 못이 튀어나올 줄 몰랐고,
햇빛이 이토록 뜨거울 줄 몰랐습니다.
결국 구두를 벗어들고 스타킹 한겹으로 감싸진 맨발로 2km 정도를 걸어갔습니다.
분향소 직전 약 10m정도에서부터 한 한시간은 기다린 것 같습니다.
결국 약간의 탈수 증세와 빈혈, 더위 덕분에 실신 직전까지 갔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저희가 서있던 줄의 차례가 되어있었습니다.
정신없이 헌화를 하고, 걷어올린 바짓자락도 내리지 못한 채 잠시 몇 초 간의 묵념, 상주들에 대한 인사를 하고 나와야만 했습니다.
영정사진의 은은한 미소조차 잠시밖에는 뵙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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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볕아래 누구하나 불평 입 밖에 내지 않고 묵묵히 서있는 사람들과
조작보도로 인해 쫓겨난 KBS취재진 및 조중동 기자들,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애기들의 눈과 몇 시간째 서있는지 모를 자원봉사자분들.
수행원들과 걸어가던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저 멀리서부터 사람들에게 물세례와 욕세례를 받으며 걸어오던 김형오 국회의장.
신문지 한 장 차 앞유리에 붙여 더위를 피하던 언론사 기자들.
조문객 행렬 너머로 보이던 부엉이 바위.

말없이 태양아래 서있던 우리의 눈에 보이던 이 모습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지만, 무엇보다 어떤 가치판단도 이 앞에서는 쓸 데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끝까지 잘잘못은 가려내고 잘못은 바로잡아야할 일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말 잘못을 했는지, 현 정권의 문제가 뭔지, 누가 이 분을 몰아갔는지 이것저것 따지는 것들보다
지금 이 순간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며 모인 사람들의 마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난 자리에 모여든 이 군상들 자체가
그 무엇보다 가슴 깊숙이 남을 광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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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 분들이 나눠주시는 국밥과 수박은 차마 줄이 너무 길어 기다리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돌아나올 때는 도저히 맨발로도 걸을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결국 SBS 기술팀으로 추정되는 분들의 차를,
이미 자리가 없음에도 자리를 만들어주신 덕에 감사하게도 얻어타고 큰 길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내려주신 곳에 편의점이 있어서 욕실슬리퍼를 하나 장만해 신고 걸어나와 감사의 뜻으로 음료수를 드리고 다시 좀더 걸어나왔습니다.
무지막지하게 쏟아내리는 비를 다른 조문객들과 함께 피하고, 그 비가 그치게 되는 한참 후에야
밀리는 도로에서, 차량통제되는 그 곳을 경찰분들을 설득하시면서까지 차를 몰고 와주신 친구의 부모님 덕분에
겨우 터미널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고,
마치 전투에 나가 심지어 패하고 돌아오는 기분이라던 친구의 말처럼 무지하게 지치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친구의 부모님께 초면에 그것도 엄청난 폐를 끼쳤지만,
게다가 지금 제 발은 콩알만한 물집들로 가득하고 심지어 발바닥까지도 물집으로 부풀어올랐지만,
그래도 그곳에 그 분을 뵙고 돌아온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그 분의 죽음은 너무나 무겁고 슬프지만요.

봉하마을에 가는 저를 위해 이것저것 잘 챙겨주신 어머니와
자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찍지 않았었지만 그 사람만큼 우릴 위해 잘 한 사람은 없다시며 차비를 챙겨주시던 아버지와
현재 저질체력의 최고봉인 나를 짜증내지 않고 챙겨준 내 친구 재열이.
그래서인지 유독 더 감사함을 느낍니다.



내일부턴 저도 제 생활로 돌아가 열심히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 열심히 살고 돈을 벌어야 책을 사 보고 공부를 하고 좀더 깨어있는 인간일 수 있을테니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현 정권 관련 추이상황, 앞으로의 대한민국.
깨어있는 의식으로 제대로 지켜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