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정리를 하다가 보니 오래된 노트들과 연습장이 많기도 하더군요.
그 중에는 수업시간에 필기한 것들이나 수학 문제를 푼 것들도 있었지만 만화 스토리를 적어둔 노트도 있었고, 실제로 조금씩 작화를 해둔 것들이나 콘티들도 있었지요. 그리고 그 시절의 작문들도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글을 잘 적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나름 제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것을 재미있어 했었습니다.
이래뵈도 고등학교에서 산문 문예창작 동아리 회장이었거든요. ㅋㅋ
물론 작문 실력이 아니라 선배언니들이 좋게 보아주신 덕에 맡은 자리였지만요.
여하간 그 시절에 적은 것들이나 그린 것들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듭니다.
그 시절, 청소년 특유의 냄새가 나거든요.
필요 이상으로 한 문제에 고민을 하기도 하고, 또 얼핏 비장하기도 하구요.
그때의 감성이 느껴지면서... 그러면서도 그 시기를 지나와버린 지금에 와 읽어보고 있자면 정말 풋내가 나서 웃음이 나네요.
그러면서도... 역시 저랄까. 어두운 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구요. ㅋㅋ
내일, 아니 벌써 오늘이네요. 8월 17일에는 병원 때문에 서울에 갑니다.
(연락이 닿는 사람이 있다면 양꼬치라도 같이 먹고 싶은데... 주말이라 사람들도 메신져에선 보이질 않네요.)
괜히 17일 분의 포스팅이라고 치고 이 부끄러운 글들을 몇 개 올려봅니다.
읽으실 분들만 펴서 읽어주세요. 사실 저도 올리면서도 부끄러워서요 ㅋㅋㅋㅋㅋ
단상(單想)
차가운 것이 좋다.
따스함에 묻혀-무너져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
온 몸이 오그라질 그 차가운 것이 좋다.
알맹이없는 미소를 건네어야 할 그 어리석음보다
아무런 의미없는 것에 긴장해야 할 그 두려움보다
나 자신에 충실한,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을, 그런 것이 좋다.
그들은 따스하나 나의 것을 가져가고
그들은 따스하나 언제나 나를 질책한다.
잘하면 어느새 그것이 당연해지고
못하면 항상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 우스움이 싫었다.
매일 매일 살아가면서 처절히 느끼게 되는 삶의 회의감.
그것은 삶의 적막-.
차라리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길...
아침이면 눈뜨게 되는 것, 그것은 힘겨운 나의 몸부림이다.
나의 절망이다.
벗어나지 못할 밝은 빛.
벗어나지 못할, 그 덫, 두려운, 달콤한 그 것.
울고 있어도 웃을 수 밖에 없고
절망하여도 노래할 수 밖에 없다.
차가운 것이 좋다.
눈물흘려도 그것에 거짓이 없고
분노하여도 제풀에 쓰러질 그 초라함이 좋다.
후회하여도 나에게 후회하고
기뻐하여도 진정 가슴으로 기뻐할 나의 진실.
그것은 사회를 거스르는 것이나
나에게 거스름이 없고
인간이란 것에 실망하게 될 것이나
자신에게 감동할-
우상같은 나의 모습,
그 이단의 길이 좋다.
---
이 글은 수필이었는데, 어느새 시가 되어버린 글이었습니다.
한창 사람들과의 관계, 타인의 시선들과 나 자신이 원하는 것과의 갈등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적은 글이었는데,
제 친구가 이 글을 읽고 울어주었답니다.
부끄러운 글이지만, 그 때문에 아직까지도 저에게 소중하게 남아있네요.
그녀는 죽은 듯 보였다.
숨을 죽이고 그렇게 죽음으로 보이길 원했다.
하지만 죽음이 아니었다.
살갗 위로 흘러내린 건조한 어둠 아래
희미한 그림자에 기대어
그렇게 버티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정적이었다.
두려운 고요함이랄까.
그림자를 박차고 일어나
머나먼 그 곳으로 달려가기전
숨을 죽인 소름 끼치는 고독.
그녀는 그렇게 그림자에 버티어
언제까지고 묵묵히 죽음을 원했다.
마치 살아있는 자신의 눈을- 그 몸을 저주라도 하듯이.
---
저는 항상 첫째줄과 둘째줄에 앉았었는데(그 뒷 줄부터는 수업시간에 졸게 되기 때문에)
고1 영어수업시간에 하얗고 작은 나비 한마리가 날아와 제 책상 앞쪽 교실 바닥에서 죽어가는 걸 목격했습니다.
날아와 곧장 죽은 것이 아니라 몇 번이고 팔락 팔락 날개짓을 하다가... 갈수록 그 횟수가 줄어들면서 결국 움직임이 멈추더군요.
때문에 저는 그날 영어수업은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그 나비만 계속 바라봤습니다.
왠지... 그 장면을 기억해둬야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그 나비를 하얀 종이 위에 얹어 화단가에 잘 묻어두고는 제 자리로 돌아와 저 글을 적었습니다.
꽤나 강렬했던 햇빛 속에서 죽어가던 그 모습은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네요.
오수(午睡)
미쳐버릴 듯한 고요함 속에
질려버릴 그 환함 속에
자신을 지키려는 그 존재가
애처롭게 웅크린다.
아스팔트가 타고 있는 것을
갈라진 벽이 무너지는 것을
저 빛은 아는지 모르는지
저 존재 또한 아는지 모르는지.
단지 저 초라함은
자신을 지키려 할 뿐,
저 빛 또한
그림자를 지우려 할 뿐-.
더이상은
아무것도 알지 않으려는
그 몸부림.
구부린 저 등위에
움츠린 저 어깨위에
삼킬 듯한 빛의 폭포.
분노하는 나의 모든 것은
저들에 가려져
서러운 눈물로 흘러내리고
다시금 쓰러져
죽음으로 보이길-.
나는 그렇게
숨죽이고 있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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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작시 대회가 있었습니다.
주제가 '오수(午睡)'였죠.
저는 사실 그 낮잠에서 이 위에서 적었던 나비의 죽음을 떠올렸고,
실제로 그런 햇빛 속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적었습니다.
그게 느껴져서 그런지, 그저 저 쓸데없을 정도의 비장감 때문에 그런 건지
저 시에 대한 평은 주로 '무섭다'였습니다.
'국화와 칼'을 주제로 한 산문 작문 대회에서는 나름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저 글은 후보에도 오르지 않았었네요. 한마디로 깨끗히 떨어졌드랬습니다.
그래도 전 이 시를 꽤나 맘에 들어했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