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공 '미카' 원화 및 일러스트 작업과정

추가로 미카의 작업과정도 공유드려봅니다.


이 작업은 처음에는 원화로 시작했다가러프진행을 완료한 시점에 일러스트까지 그대로 이어서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어 동시에 작업하게 된 케이스입니다. 일러스트 진행과정은 레이, 마리아와 동일하지만, 원화단계에서 했던 고민들을 좀더 설명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추가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1. 러프


작업에 들어가면서 기획에 대해 파악을 합니다.

기획자분과 대화하면서 여자’ ‘정비공 두 가지의 키워드를 얻었습니다.


기획이 자세하게 나올 때와 많이 열려있을 때 각각의 매력이 있는데요,

기획이 자세하게 나온다면 그것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 디자인적으로 드러나게 만들지에 대해 더 고민할 수 있어서 재밌고, 많이 열려있다면 저 스스로의 생각을 많이 넣을 수 있어서 재미가 있습니다


이번 경우는 후자인데요, '여자'와 '정비공'을 어떻게 결합해서 보여줄지와 그 외의 모든 요소를 어떻게 보여줄지, 또 시각적으로는 어떤 재미를 줄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이 작업에서의 즐거운 포인트였습니다. 


 

저는 이 단계에서 사실 잘 디자인을 한다는 생각보다는 이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아이템을 찾는다는 생각으로 진행했습니다. 


미카의 가장 큰 특징 '정비사'의 경우 항상 무언가를 고치고 이동하고 손님(유저)의 차가 고장나면 출장가기도 하는 그런 이동성까지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활동성이 보장되려면 '이 캐릭터는 무조건 스포티다!'를 외치며 스포티한 디자인의 옷들을 여럿 그려주고, 출장정비사라는 느낌으로 장비들이 가득 든 가방까지 둘러줍니다. 모자도 야구모자부터, 캡모자, 용접보안면까지 다양하게 준비해봅니다. 각 요소별로 조합이 가능한 아이템의 선택지를 준비합니다. 물론 일부러 가짓수를 늘릴 필요는 없고, 조정할 수 있는 여지 정도로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이렇게 러프를 가지고 기획자분과 얘기를 다시 나눠보는데다소 판타지 같은 느낌이 느껴진다는 것과 좀더 일반적인 정비공 같은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이 왔습니다


기획자분의 눈에 왜 그렇게 보였을까 파악해보니 크로커스가 현대적인 느낌의 복식이 많기 때문에 일상복에서 동떨어진 느낌이 나는 옷 느낌에서 다른 세계관으로 느껴지는 듯 하고, 정비공>태엽으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허리벨트에 크게 박아둔 상징이 일반 게임컨셉에서는 자주 쓰이는 방식이지만 여기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 정비공을 장비가방으로 보여준다는 생각도 자주 쓰이는 방식이긴 하지만, 사실 스패너 하나 만으로도 단서를 주기엔 충분하다는 면에서 과한 컨셉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방이나 기타 복잡한 것들을 덜어내고, 보다 평범한 느낌이 드는 복식으로 정비공하면 떠오르는 청 멜빵바지를 입힌 두 가지 버전의 러프를 다시 잡아봅니다.





오른쪽의 러프로 진행하자는 결정이 나게 됩니다. 짠!

그리고 AD님으로부터 러프의 느낌 그대로 일러스트까지 진행해달라는 요청도 받게 됩니다.






작업자는 자신이 경험한 것에 기반해서 작업하기 때문에, 이전에 그렸던 반응이 좋았던 작업이나 성공한 프로젝트에서의 작업흐름에 따라 작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전혀 다른 세계관의 게임 프로젝트인데도 하던대로 작업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과한 컨셉팅이 되기도 하고 혹은 반대로 너무 심플한 컨셉팅이 되기도 합니다. 같은 세계관을 가진 게임프로젝트가 아닌 다음에야 당연한 일이죠. 그래서 세계관 자체에 대해 기획적인 이해도 필요하고, 시각적으로 세계관을 어떻게 보여줄지 가장 큰 방향을 결정하는 '아트디렉터'의 디자인기준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매력을 만들어내고 채울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모든 걸 이해하고 작업에 들어갈 순 없지만, 러프 단계에서 최대한 많은 대화를 나눌수록 기획자-(AD or 파트장)-작업자(나)가 가진 게임의 세계관에 대한 코드가 점차 맞아떨어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러프 단계에서 필요한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중에 작업이 끝난 후에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대대적인 수정작업을 해야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상당히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고, 원화가로선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죠. 필요한 수정은 완성된 이후든 이전에든 반드시 해야하지만, 가능하다면 러프단계에서 바로잡을 수 있도록 의사소통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b






2. 스케치 구체화


러프 상태에서는 최대한 캐릭터에서 살리고 싶은 느낌에만 집중했기에 다른 캐릭터와의 밸런스나 크로커스 그래픽 풍에 대한 고려는 없었습니다기존에 작업완료된 캐릭터들을 둘러보며 키나 체형에 대한 조정을 합니다선 느낌에 기대서 진행한 러프와 덩어리의 실루엣을 구체화하는 스케치는 서로 이질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가급적이면 원래의 러프를 함께 띄워놓고 가장 중요한 느낌(캐릭터의 성격, 표정)은 절대 놓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진행합니다. 




실루엣을 면으로 잡아보면서 덩어리감을 수정합니다좌우 반전을 해보니 러프와 달리 왼발이 어색해보여서 내려줍니다

 

자동차 정비공이라는 단서를 주기 위해 스케치 단계에서 빠져있던 수첩, 휠 렌치, 차 열쇠꾸러미도 추가로 넣어주고 몽키스패너의 실루엣도 정확히 잡아줍니다.






3. 배색 및 디자인


캐릭터에 있어서 배색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캐릭터의 자세한 생김새는 잊혀지지만 색이 주는 인상이나 특이한 문양등은 기억되기 때문이죠캡콤사의 춘리나 모리건 등을 생각해보면 각 캐릭터마다 당연한 듯 떠올려지는 색이 있고, 일본에서는 에반게리온 레이의 머리칼 색을 본딴 페인트까지 출시되었다고 할 정도니까요. '이 캐릭터는 이런 느낌이야'를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최고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성복을 코디하는 정도로는 디자인이라 하기에 아쉬울 듯 해서, 흔한 아이템-다른 디자인 느낌을 줄 수 있는 장치를 고민해봅니다.


1. 흔한 청 멜빵바지에 작업복에서 볼 수 있는 허리 아랫단 세로 주름 부분을 믹스해서 배색을 달리해 넣어줍니다.

2. 롱 스니커즈에 벨크로와 형광연두 역삼각형 조각을 덧대어 미카만 신는 스니커즈를 만들어봅니다.

3. 너트 느낌의 재질/두께감으로 태엽모양 귀걸이. 

4. 브랜드속옷 느낌으로 밴드에 ‘CAR DOCTOR’라고 적어줍니다. 'MECHANIC'보단 카 닥터가 직관적이라서요.

5. 용접면도 기존의 투박한 느낌보다는 좀더 모던하고 패션아이템처럼 디자인해줍니다.


'아 이 색은 미카구나' 혹은 '이 문양은 미카구나'를 인식하기 위한 장치를 고민해봅니다.


1. 정비공=자동차가 연상되도록 흔치 않은 타이어 자국모양의 타투

2. 발랄한 느낌의 형광색 매니큐어, 실핀

3. 공사장에서 반사테이프에 자주 쓰이는 형광연두를 활용한 둥근 역삼각형 마크



목에 걸려있던 보안경은 머리 위 야구모자와 겹쳐쓴 용접면과 역할이 겹쳐서 삭제했습니다.


이렇게 배색단계에서 디자인은 모두 끝났네요!

그리고 이번에는 다행히 한번에 OK통과가 됩니다.






4. 묘사


묘사는 마리아, 레이의 작업과정과 동일하게 글레이징 기법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보다 쉽게 느낌을 잡기 위해 색 레이어를 켜둔 상태로 명암 레이어를 채색해나갑니다무채색으로만 묘사를 하면 되므로 swatch의 회색계열을 찍어 사용하거나 컬러 패널을 grayscale로 해두시면 편합니다




1. 우선 가장 크게 떨어져보이는 어둠을 찾아서 표시해줍니다. 빛의 방향과 세기를 결정하는 과정입니다이때 정한 어둠의 정도가 그림 전체적으로 사용될 명암톤의 범위를 결정하기 때문에 이때 칠한 그늘보다 더 진해지는 건 역광 조차도 닿지 않는 접힌 부분들이나 빛의 방향과 정확히 평행한 면(가장 어두운 면) 정도일 겁니다그 외엔 저 어둠보다는 확실히 옅어야 그림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기준되는 어둠을 잡은 이후에는 빛의 방향에 맞춰 차차 명암 묘사를 진행하면 됩니다.




2. 묘사를 하는 중간중간 명암레이어 뿐만 아니라 색 레이어에서도 디테일을 올려줍니다. 청 멜빵바지의 자연스럽게 헤어진 부분과 흙묻은 느낌을 추가해줍니다자연스러움과 디테일을 위해 용접모에 생긴 자국들을 추가해주고몸에 묻은 흙자국들을 추가해줍니다. 화장과 자연스러운 홍조도 올려줍니다. 그리고 뒤늦게 추가했던 자동차 키들도 구체적으로 형태를 잡아줍니다.



 

3. 열심히 명암묘사를 하고, 명암&컬러 레이어를 함께 켜면 이렇게 됩니다. 






5. 손


제 작업에서 어김없이 나오는 과정입니다. 최대한 어울리는 각도로 잘 꺾어서 찍어봅니다.





스케치 단계에서든 면을 잡는 단계에서든 혹은 형태를 잡는 단계에서든 작업하시는 분들이 편한 시점에 형태를 잡게 될텐데요오른손은 비교적 쉬워서 면을 잡을 때 잡은 그대로 묘사가 되었고 왼손은 자주 그리던 각도가 아니어서 어려웠던 터라 묘사를 진행하면서 잡아주었습니다. 매번 기본기 훈련의 필요성을 격하게 느낍니다.

 



6. 하이라이트 및 반사광




재질마다 반사도가 다르기 때문에 고려해서 빛을 올려줍니다.이때 금속부의 느낌이 확 올라오게 됩니다




7. 완성


크로커스 로고를 올려주면 완성입니다!





제 폰이 아이폰이라 아이폰 화면 비율로 레이아웃도 해보고, 완성의 기쁨을 즐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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