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OO #WITH YOU_가해자에게 말합니다.

 

페이스북에서 가해자를 이미 차단한 상태였는데 페이지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글을 블로그에 올린 시각이 20:53이었는데, 00:01에 처음 메시지를 보내주셨네요. 언젠가는 돌고 돌아 당신께도 읽힐지 모르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즉각적으로 대응하셔서 많이, 아주 많이 놀랐습니다. 이 글도 금방 읽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당신을 매장 할까봐 걱정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당신을 매장시켜서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만약 당신을 매장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아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글을 썼을 테고, 최대한 이슈가 되도록 온갖 자극적인 단어를 모두 가져다 썼을 겁니다. 당신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들을 글 곳곳에 최대한 꼼꼼하고 치밀하게, 실수인 척 배치했을 겁니다. 더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면 조금 더 감정적에 치우친 편도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글을 쓰는 2주동안 당신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가리고 감추는데 주력했습니다. 당신에 대해 추측하지 못하도록 직장 / 시간 / 실명 / 직급에 대한 언급 모두 최대한 뭉뚱그려 썼습니다. 제 글은 당신을 끌어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 그리고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분들을 응원하기 위해서 썼을 뿐입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 입니다.


오히려 저는 제가 안 좋은 시선을 받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어 없는 얘기는 사람들의 귀에 가닿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저를 밝히지 않을 수 없었고, 저와 동명이인인 원화가분을 알고 있기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저의 아트웍을 올리는 공간에 글을 올렸습니다.


제가 살면서 가진 몇 안 되는 행복은 그림입니다. 몸이 아프고, 여러 번의 수술을 거치면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고, 제가 이번 생에 세상에 남길 수 있는게 뭘까 많이 고민해왔습니다. 제가 세상에 태어나 저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비록 가상의 존재들일지라도 가장 알맞은 시간, 가장 알맞은 장소, 가장 알맞은 쓰임새와 형태에 맞춰 디자인하고 그들이 영원히 살아 숨쉬게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저도 그렇게 존재하고 싶은 것처럼요.


그런 제가 그 글을 쓰기 위해 저의 가장 소중한 작업, 아트웍에 붙여질 성희롱 피해자라는 낙인을 감수했습니다. 당신은 제가 당신을 매장시킬까봐 걱정되겠지만, 반대로 당신이 저를 매장시키는 것이 더 쉽습니다. 전 이미 드러나있으니까요.


당신은 저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당신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부자가 되든 다른 무엇을 하든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당신이 꼭 성공해 보이겠다는 말에 그러시라 했던 이유는 당신이 성공해서 나와 전혀 상관없는 공간에서 나를 떠올릴 일 없이 잘 지낼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겠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성공한다고 해서 제가 배 아프지도, 당신이 실패한다고 해서 즐거워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제가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당신이 보낸 메시지에 대해서 하나 하나 따져가며 반박하진 않겠습니다. 반박해야 할 부분들은 너무 많지만, 그러다 보면 부득이하게 당신에 대한 정보 혹은 당신과 나 이외의 주변인들에 대해서까지 언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원하는 바도 아니리라고 믿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명확합니다. 당신이 잊혀지기를 원합니다. 더 이상 내 삶을 침범하지 말아주었으면 합니다. 당신이 잊혀지는 한 저는 당신의 실명을 말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사과, 속죄, 해명, 변명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저에게 설명하거나, 저를 설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저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것뿐입니다.